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독실한 [[정교회]] 신자였으며 하느님의 뜻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.[* 남편 요르요스 1세가 총을 맞아 승하한 뒤 남편의 시신 옆에 무릎 꿇어 오랫동안 기도하기도 했다.] 이는 올가 왕비의 자녀들이 독실한 정교회 신자로 성장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, 올가의 차녀인 [[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|마리아 공주]]도 올가 왕비가 매우 신실한 신자였다고 언급했다. * [[1851년]]에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올가의 윗동서이자 [[프레데리크 8세]]의 왕비인 [[로비사 요세피나 에우게니아|스웨덴의 로비사 공주]]와 서로 동갑이다. 생일은 올가가 한 달 정도 빠르다.[* 스웨덴의 로비사 공주의 생일은 1851년 10월 31일이다.] 심지어 두 사람의 사망한 년도도 [[1926년]]으로 똑같다. 먼저 로비사 공주가 1926년 3월 24일에 세상을 떠났고, 6월 18일에 올가가 세상을 떠났다. * 또한 올가 본인과 윗 동서인 로비사 공주, 올가의 맏며느리인 [[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알리체|프로이센의 조피]]는 모두 [[프로이센 왕국]]의 [[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]]의 증손으로 6촌 자매간이다. 올가의 경우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장녀 [[프로이센의 샤를로테|샤를로테]]의 손녀이고, 로비사의 경우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4녀 루이제의 외손녀, 조피의 경우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차남 [[빌헬름 1세]]의 손녀이다. * 조카며느리 [[조지 5세]]의 왕비 [[테크의 메리]]와 6촌간이다. 메리 왕비의 아버지인 [[프란츠 폰 테크]]가 올가의 어머니 알렉산드라의 외사촌이기 때문. 또한 [[룩셈부르크]] 대공 [[기욤 4세]], [[바이에른 왕국]]의 왕 [[루트비히 2세(바이에른)|루트비히 2세]]와 그 사촌인 마지막 왕 [[루트비히 3세]]와도 6촌간이다.[* [[기욤 4세]]의 할머니인 루이제와, [[루트비히 2세(바이에른)|루트비히 2세]], [[루트비히 3세]]의 할머니인 테레제 왕비가 올가의 외할아버지인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요제프의 여동생이다. 기욤 4세도 루트비히 2세, 루트비히 3세와 6촌간이지만, [[테크의 메리]]는 이 셋과는 6촌이 아니다.] 뿐만 아니라 [[뷔르템베르크 왕국|뷔르템베르크]]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 기준으로 8촌이다. 올가의 경우 프리드리히의 장녀 [[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|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]]의 증손녀, 메리는 프리드리히의 차남 루트비히의 증손녀. * 소녀 감성이 있어 그리스로 시집가기 전에 [[인형]]들을 챙기고 러시아를 떠났다고 한다. * [[영국]]의 국왕이자 시조카였던 [[조지 5세]]가[* 올가의 시누이 [[덴마크의 알렉산드라|알렉산드라 왕비]]의 차남이다.] 제일 좋아했던 친척이었다. 조지 5세는 성품이 다정한 외숙모인 올가를 많이 따랐고 올가도 아버지 콘스탄틴 대공의 영향을 받아, [[해군]]에 관심이 많았는데 똑같이 해군에 복무하며 자신을 따르는 조지 5세를 다정하게 대해줬다고 한다. 그리고 올가의 [[필립 마운트배튼|친손자]]가 조지 5세의 [[엘리자베스 2세|손녀]]와 결혼해서 [[찰스 3세|영국 왕위를 가져가고...]] 물론 둘 다 사망하고 한참 뒤의 일이다. * 올가는 남편을 매우 사랑했지만 결혼하면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. 그리스에서 올가는 러시아 선박이 당도하면 찾아가거나, 러시아인 선원을 궁에 불러 이야기를 듣는 등, 러시아를 계속 그리워했다. * 남편 [[요르요스 1세]]와 단 둘이서 대화할 때는 [[독일어]]로 대화했다. 연애했을 당시에 둘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독일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. 애초에 둘 다 진짜 그리스인도 아니고 독일인이다.[* 남편 요르요스 1세의 부모인 [[크리스티안 9세]]와 [[헤센카셀의 루이제]]는 모두 독일 왕공족 출신이고, 올가의 어머니 [[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]]와 할머니 [[프로이센의 샤를로테]]도 독일 출신이여서 독일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. 애초에 [[로마노프 왕조|홀슈타인고토르프 로마노프 왕조]]의 [[표트르 3세|직계 조상]]부터가 독일인이었고, 러시아 황실에는 대대로 독일의 왕녀 및 공녀들이 황후나 대공비로 자주 시집왔다. 이는 과거부터 러시아와 독일의 교류가 잦았던데다 [[귀천상혼]]을 피하기 위해 독일의 왕공족 출신의 영애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.]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가정에서 [[영어]]를 사용했으며[* 요르요스-올가 부부는 자녀들의 보모를 영국인으로 고용했는데 이는 당대 유럽 왕실에 큰 유행인데다, 큰 시누이인 [[덴마크의 알렉산드라]]가 [[영국]]의 왕태자비였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.]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말할 때 [[그리스어]]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.(...) * [[그리스 해군]]의 [[구축함]] 바실리사 올가(Βασίλισσα Όλγα)[* 1925년 폐기.]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에서 따서 지어졌다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title=요르요스 1세,version=106,paragraph=3.2)] [[분류:그리스 왕비]][[분류:러시아의 공주]][[분류:그리스의 섭정]][[분류: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]][[분류:글뤽스부르크 가문(그리스)]][[분류:1851년 출생]][[분류:1926년 사망]][[분류: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인물]][[분류:러시아의 객사한 인물]][[분류:왕대비]][[분류:타토이 왕실 묘지 안장자]][[분류:덴마크의 왕자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